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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아니라 '열쇠'다(중앙일보)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70


<세설(世說)> ‘키’가 아니라 ‘열쇠’다

구 법 회 한글학회 정회원/전 연수중학교 교장


[중앙일보] 입력 2011.09.26 00:25 / 수정 2011.09.26 00:25


한글날이 다가온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이제 한글은 세계의 으뜸 글자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한글을 잘 가꾸고 말글 생활을 바르게 하여 이를 세계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에 대해 학자나 우리 말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걱정꺼리가 더 많다. 우리 말글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오염 사태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우리말을 바르게 가꾸는데 가장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외래어와 외국어가 우리말을 잠식하는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과거 한자사대주의가 영어사대주의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


1980년대 후반 영어 열풍이 몰아치면서 우리말에 영어를 조금씩 섞어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더니 요즘은 지구촌(글로벌)시대라 하여 각 분야별로 영어이름을 지어 쓰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기업체, 회사, 아파트, 간판, 광고, 상품이름 심지어는 전철역 이름까지 영어로 쓴다.


우리말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일은 주로 언론에서 배우게 된다. 신문이나 방송이지구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새로 들어오는 외국말 용어를 번역하지 않고 글자만 한글로 고쳐 쓰는 경우가 문제다. 생활언어에까지 영어가 끼어들어 우리말을 훼손시키고 있다. 스태그플레션, 더블딥, 익스포저, 헤지펀드, 버핏세, ‘디폴트(채무불이행)’과 같은 경제용어를 비롯해서 로스쿨, 리콜, 마일리지, 핫이슈, 매니페스토, 보이스피싱, 업그레이드, 타임오프, 스펙, 스킨십 등 어느 분야를 봐도 영어가 빠지지 않는다.

‘오픈하다, 해피하다, 쿨하다, 디테일하다, 퍼펙트하다, 실버촌’처럼 영어의 줄기에 우리말 접사를 붙여 쓰기도 하고 ‘상자는 박스, 열쇠는 키’로 둔갑하여 이들은 이미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국어 행세를 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종이사전)에는 440만여 개의 낱말 중에 9.2%의 서양외래어가 들어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늘어난 신어(새로 생긴 말) 1,690개 가운데, 서양식 외래어와 이를 일부 포함한 외래어까지 합치면 전체의 57.6%를 차지한다고 한다.(박용찬) 이런 추세라면 국어사전에 외래어가 점점 늘어나 언젠가는 누더기 사전이 되고 말 터이니, 이것을 국어사전이라고 자랑스럽게 내 놓을 수 있겠는가? 어느 나라말이건 외래어는 있게 마련이지만 신생 외래어의 급증은 결국 우리말을 오염시켜 그 특성과 순수성을 훼손시킨다.


이제 우리는 ‘네티즌→누리꾼’처럼 외래어도 가능한 것은 다듬은 우리말로 쓰도록 노력하고, 날로 늘어나는 신생 외래어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언론은 새로 들어오는 외국어를 번역해서 쓰고 언론사에 따라 번역의 차이가 있으면 서로 조정하여 통일해서 쓰면 된다. 또 하나의 방안으로 귀화어로 만들어 쓰는 것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귀화어란 말 그대로 언어의 국적을 바꾸는 것이다. ‘남포’가 'lamp'에서 귀화하여 우리말이 되었고, ‘고무’는 ‘gum'에서 왔으나 지금은 그 뜻이 다르게 쓰인다. 지금은 남포나 고무신을 외래어라 하지 않는다. 들어온 역사가 길지 않은 ‘라디오’는 옛 어른들이 서양말 발음을 못해 ‘나지오’라고 불렀다. 이것이 우리 말법에 맞는 말이다. 이때 어르신들 발음대로 ‘나지오’를 표준어로 삼았다면 하나의 귀화어로 우리말다운 낱말이 됐을 것이다. 이렇게 일부 낱말들은 귀화어로 만들어 정착시키는 방안이 가능하다.


언어 습관은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우리 말글을 바르게 키우려면 우선 모든 국민의 의지가 필요하며, 올바른 국어교육과 함께 막강한 전파력을 갖고 있는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한글날을 맞으며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 한글과 한국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온 국민이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때다.☆



※ 이 칼럼은 중앙일보에 실렸으나 너무 줄여서 글쓴이의 의견이 일부 반영되지 않아 원본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깨몽 (2011-10-12 20:26:37)
고맙습니다.
중앙일보에 실린 글을 보고 저으기 실망을 했는데, 이 글을 보니 조금 낫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한글학회' 이름을 걸고 올리신 글인데 한자말을 조금 더 줄여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외래어'라는 이상한 뜻말을 쓰면서 영어, 일본말만 탓하고 알게모르게 한자말을 그냥 쓰게 되는 것이 우리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 터울(세대)들께서 한자말에 익숙한 것 때문에 한자말을 싸고 돈다면 요즘 터울이 영어에 익숙해서 영어 쓰는 것은 나무랄 수는 없다 봅니다.

혹시라도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듣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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