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돌 한글날이 다가온다. 이 자랑스러운 국경일을 어떻게 맞이할까 생각하다 우선 한글회관 벽에 커다란 펼침막을 내어걸기로 하였다. 거기에 “세종대왕님의 크나큰 은혜에 힘입어 어린 백성들은 이제 세계속에 선진국민으로 우뚝 섰습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오백예순다섯 돌 한글날?한글학회”라 쓰고 한 달 동안 드나들면서 절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렇지 아니한가. 광복 이후 두 세대만에 그 처절한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것이 어찌 그분의 은혜가 아니라 하겠는가. 오로지 한글로 교육을 하고 한글로 문화를 창조하면서 한걸음 앞서나갈 힘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중국에서는 뜻글자인 한자가 어렵다고 소리글자라 할 수 있는 간체자를 만들어 쓰고 있는데 초등학교에서 2,500자 그리고 중학교에서 1,000자를 더하여 가르쳐도 일반적인 문자생활을 할 수 없어 적어도 교양인으로 살려면 5천 자는 배워야 하고 나아가 언어문화를 다루는 전문직에 종사하려면 7천 자 이상은 알아야 한다고 하니 이러고서야 어찌 다른 나라의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일 여력이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한자를 버릴 수 없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와도 읽고 쓰는 국어생활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 우리 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 ‘고맙습니다’라 말하고 읽고 쓸 때 일본의 아이들은 ‘有樣’이라는 낯선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하니 어찌 경쟁이 되겠는가. 우리 어린이들이 한글을 배워 동화책을 읽고 역사책, 과학책을 읽고 있을 때 중국이나 일본의 아이들이 읽고 쓰는 국어공부에 매달리고 있으니 어찌 새로운 문화의 창조에서 경쟁이 되겠는가.
세계의 문명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그리고 21세기는 태평양시대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글자살이가 저렇고는 도저히 세계문명을 주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오로지 한글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우리 대한민국만이 그 구실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인구도 적고 영토도 좁은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세계문명을 주도해 온 나라들, 그리스나 라티움, 영국이 처음부터 큰 나라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강력한 문화창조의 도구인 희랍문자, 라틴문자, 로마 알파벳이 있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오늘 세계 도처에 일고 있는 이른바 한류 열풍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노랫말을 배우려면 필경 그것을 적는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니 어찌 그것이 적은 일인가. 나는 한글이 영미의 로마자처럼 세계의 문자가 될 날이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제 식민시대를 겪어 오늘을 살면서 참으로 산천이 변하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원래 항의 집회, 데모는 언제나 약한 쪽이 강한 쪽을 향하여 하는 것인데, 일본 동경 한복판에서 수천 명이 모여 한류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으니 이것이 꿈인지 참으로 놀라운 충격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느끼고 멀리 세종대왕께서 잠드신 여주 영릉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중국 동포 김 광 선생이 ????한글새소식???? 제469호에 실은 글 마지막 부분, ‘배달겨레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라.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님과 같은 거룩한 선조들의 은덕에 하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다. 세종대왕님의 후예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여기라. 우리글 덕분에 우리 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군체로 군림해 가고 있다.’에 감격하고 있다. 한글을 자랑하고 세종대왕을 받드는 것은 결코 폐쇄적, 국수주의적인 애국심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의 국가 브랜드로 한글과 세종대왕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부나 지도층 사람들 가운데는 그 크고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많은 국경일, 공휴일 가운데서 한글날은 빠졌다가 겨우 국경일로 이름만 얻었다. 말이 국경일이지 진실로 자랑스러운 국경일이 한글날 말고 또 있는가. 삼일절, 광복절이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날인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날,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날이, 어찌 부끄러운 날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날인가. 제헌절, 개천절은 어느 나라나 있을 수 있는 기념일이지 결코 자랑스러운 날이라 할 수는 없다. 예수님 탄생하신 날이나 석가불 탄생하신 날은 이스라엘이나 인도의 국경일일 수는 있어도 우리가 국가적으로 공휴일로 지정하고 축하할 날은 아니다. 마땅히 겨레의 구세주인 세종대왕께서 탄생하신 5월 15일 ‘세종날’이 겨레의 성탄일이고 한글을 반포한 한글날이 국경일이다.
우리는 이제 세계속에서 변방의식을 걷어내고 역사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설 필요가 있다. 세종대왕 탄신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성대한 축하의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의 글자가 될 그 날을 기약하며 한글날을 가장 자랑스러운 국경일로 맞아야 한다. ■
* 이 글은 '아나운서 저널'(한국아나운서연합회) 2011년 10월호에 실릴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