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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한울소리 18 (신화같은 삼국유사는 실화였다)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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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한울소리 18 (신화같은 삼국유사는 실화였다)



민족사를 연구하는 단체에서 월간지까지 내며 가장 활발히 운동하는 사단법인 한배달 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삼국유사 석유환국/환인 토론회 개최!
...민족의 출발점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매우 귀한 한 가지의 내용이 '환인의 아들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곰이 변한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사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은 『삼국유사』의 초반에 나오는 '古記云 昔有桓因…'에서 따온 것인데, 여기서 '桓因'이 '원본에는 '桓國'이었는데 일본인들이 桓因이라고 변조했다.'는 제기가 그간 수많이 있었으나, 학계에서는 대부분 이를 무시하고 더 깊이 파고들어보지 않음으로써 아직도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해 교과서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이하 생략)


글 순서
1. 들어가는 글
2. 삼국유사 원문

3. 桓因 桓雄 檀君때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4.우리민족 출발의 과학적 분석
5. 桓因이 아니라 '桓國'이라는 말에 대하여
6. 庶子에 대하여
7. 桓雄
8. 熊
9. 마늘과 쑥을 먹으면 왜 사람이 되는가?. 弘益人間
11. 太白山頂
12. 神市
13. 神壇樹
14. 소도(蘇塗)
15. 쎅스하는 서낭나무

16. 天符印三箇
17. 금문과 갑골문에 대하여
18. [진본천부경]은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 ...열 이고 최치원의 81자는 그 예찬시

19. 이두로 써진 최치원 81자 요점 정리
20. 최치원이 81자를 쓴 다음 괴로운 심정을 표현한시 秋夜雨中. 22. 산해경의 조선이란 말
23.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하여

21.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사대서적 이라는데 대하여

24. 지금도 쓰고있는 이두
25. 나가는 말


1. 들어가는 글
이상 한배달에서 토론하고자 하는 취지는 비록 桓因이냐 桓國이냐 문제보다도 그 삼국유사에 쓰여 있는 신화 같은 내용과 이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일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내용일 것으로 안다.
이는 매우 훌륭한 일로 이런 신화같은 내용을 하나 하나 풀어갈때 히미한 우리상고사가 보다 확실밝혀져 신화 취급은 받는 우리 상고사를 실화로 만들려 하려는 취지로 보아 글쓴이 구길수는 다른 일로 참석은 못 하더라도 이 문제를 위 글 순서처럼 하나 하나 글로 정리하고자 한다.



2.삼국유사 원문
[삼국유사] 고조선(三國遺事 古朝鮮) 편
'고기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환인(제석을 이른다)서자(庶子) 환웅이 계서서 천하에 뜻을 두고 사람 사는 세상을 탐구하자 아버지는 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과연 홍익인간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인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했다. 환웅께서는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정(지금 묘향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검불’이라 일렀고 그분을 환웅천왕이라 일렀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에게 곡식과 생명과 질병과 형벌과 선악 등 무려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 일을 주관케 하여 인간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이때 하나의 곰과 호랑이가 한 동굴에 살았는데 늘 신웅(환웅)께 사람 되기를 빌었다. 이에 신(환웅)께서는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개를 주면서 일렀다. “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다.”그래서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먹었다. 곰은 기(忌)한지 삼칠 일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기(忌)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해 혼인해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일렀다.
(三國遺事 古朝鮮 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遺往理之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太白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時有一熊一虎同穴而居常祈于神雄願化爲人時神遺靈芥一炷蒜二十枚曰 爾輩食之不見日光百日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熊得女身虎不能忌而不得人身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壇樹下祝願有孕雄乃假化而婚之孕生子號曰檀君王儉)

이상 이 글 원문에서 桓因, 庶子,桓雄,熊, 三危太伯,弘益人間,太白山頂,神壇樹,天符印三箇, 과 그 단군이 세운 朝鮮에 대하여 알아본다.



3.桓因 桓雄 檀君때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환인이라는 하느님 당시나 그 서자 환웅 당시에는 이런 한자는 그만두고 아무런 글자가 없었으므로 하느님은 새 나라를 세우려는 그 아들 환웅에게 그 새 민족이 써야할 말과 글자가 되는 天符印 세 개를 내려 주셨는데 그 천부인이란 天地人을 뜻 하는 ㅇ ㅁ ㅿ 이라는 것은 이미 정설이고 이 ㅇ ㅁ ㅿ 으로 우리 글자를 만든다(글쓴이의 졸저 ㄱ ㄴ ㄷ ...ㅎ 의 뜻 [천부인 ㅇ ㅁ ㅿ] 참조)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새 나라를 세우려는 환웅께 그 나라 백성들이 지키고 살아야 할 교훈도 내려 주시는데 이는 그 천부인과 한 쌍이 되는 천부경(한울소리)이다.

이 말씀을 받은 환웅은 그 말씀이 변질되지 않 하기위해 그 신하 신지에게 말을 보관하는 방법을 명 했고 신지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말 의 보관도 이와 같이 하면 될 것” 이라고 생각하여 만든 글자가 바로 북한 영변지에 실려 있는 신지녹도문자 16 자이며 이를 해독해보면 바로 우리가 숫자로만 알고 있는 “하나 둘 셋...열”이고 이를 아침저녁으로 외우다 보니 천년 후에자 숫자가 되었다는 것이 갑골문상 나타난다.
따라서 하느님 환웅 당시에는 아직 글자가 없어서 하느님 교훈도 말씀으로 전했다 하여 口傳之書라는 말이 고운집이나 여려 사서에 쓰여 있고 그래서 인류 최초의 글자는 바로 신지녹도문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이 된다.(글쓴이 졸저 신지녹도문 [진보천부경] 하나둘 셋 ...열 중에서)
그러니까 위 삼국유사의 글은 고려 말 중 일연이 古記라는 중국의 글을 인용하여 쓴 것인데 중국인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적지 못하니 이두문으로 적은 것이고 일연 당시는 이두가 유행할 시기이니 桓因, 庶子,桓雄,熊등은 이두로 풀어 보지 않으면 신화가 될 뿐이다.

4.우리민족 출발의 과학적 분석
위 삼국유사 글을 보면 하늘나라 하느님의 서자 환웅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곰과 결혼 단군을 낳는것으로 보이니 신화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으로 검토해 본다.

학계에서는 인류가 대략 1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고 그들은 열사의 사막을 지나 지금 터키 부근에서 유럽과 아시아 쪽으로 퍼지면서 각자 그 지방의 기후에 적응, 여러 형태의 민족으로 분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민족은 어디서 왔을까?
다음은 SBS에서 심혈을 기우려 제작한 문화대탐험 ‘몽골리안 루트를 가다’에서 그 요점을 발췌한 내용이다.

충북대 고고 미술사학과 박선주 교수에 의하면 현재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인의 두개골과 현재 한국인의 두 개골은 엄청나게 다르지만 신석기 인과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있었던 구석기인과 신석기 인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불과 1만 5천년 전후로 추정되는 구석기인과 신석기인의 모습이 그렇게 다른 것은 새로운 유전자의 도입으로 보고 있다. 즉 한반도 내에 후기 구석기인이 살고 있었는데 1만5천년 전후 빙하가 녹으면서 그 구석기인들은 황해나 동해 때문에 한반도 남북으로 이동 할 수 있는 길밖엔 그곳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에게 어떤 딴 종족이 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유전자를 교환하여 신석기인, 즉 우리 같은 종족을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즉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구석기 말기에 커다란 지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차츰 빙하가 녹으면서 대륙과 붙어있던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대륙과의 통로는 오직 북쪽 루트 밖에 없었고 이 북쪽 루트를 통해 다수의 신석기인 들이 들어와 한국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방에서 들어와 우리를 만든 종족은 어떤 종족인가
인류 한자들은 그를 ‘몽골로이드’라 하고 그 근원지를 바이칼호 부근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이 부근에서 그들의 두 개골과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 이를 뒷받침 할 근거를 더 찾아보자

얼마 전 일본 법의학자에 의해 이 부리야트인 유전학적 정체성이 밝혀졌다.
그는 일본 내 친자감정의 일인자로 알려진 오사카 의과대학 마스모토 히데오 박사의 ‘일본인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라는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세계 여러 민족의 혈액을 채취해 인종간의 유전적 혈연의 관계를 규명해 내는데 몰두한 결과였다. 그 결과 인체 내 면역 글로블린의 일종인 GM 유전자가 인종과 민족 간에 각기 다른 배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노란색으로 나타나는 ab3st 유전자가 결정적인 비밀을 안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여러 집단을 조사하다보니 ab3st유전자는 몽골로이드 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인데 몽골로이드 중에도 북방 몽골로이드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가 많이 나타나는 지역이 부리야트 지역으로 이 지역에서 북방 몽골로이드 특징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이칼 호 부근의 부리야트 사람들이 북방 몽골로이드의 원류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가 큰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 이동은 남쪽으로 내려와 한반도에 이르고 일본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유전자를 통해 우리 한국인이 북방 몽골로이드의 한 갈래임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고 한국인과 가장 많이 닮은 민족이 바로 부리야트 민족이라는 것이다.



북방 몽골로이드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부리야트족의 유전자를 비롯해 몽골족과 울치족, 축치족과 아메리카 인디언, 멕시코나 에콰도르 또는 또 남미 숲 속의 와라니 나체족등 약 백여 개의 혈액 쌤풀을 채취, 고려대 의대 법의학 교실에서 미터콘드리아 DNA를 구성하고 있는 총 735개의 염기의 배열을 상호 비교 했다. 이는 배열상태가 일치 할수록 유전적으로 가까운 것이 되는데 분석해본 결과 부리야트족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인은 98.91%로 부리야트 족과 가장 가까웠으며 축치족은 98.65%, 울치족은 98.76%, 으로 한국인과 거의 가까웠고 북미 인디언이 98.39, 멕시코 인디오가 98.43 으로 그 수치가 약간 떨어지다가 나체의 와라니 족은 97.94로 약2%의 차이가 났다. 그러나 비교된 8개의 종족은 유전적으로 매우 유상한 종족으로 판명되었고 이는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어 진화해 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뿌리 하느님이란 하늘에 있을 어떤 귀신이 아니고 하늘이란 지금 바이칼호가 천해(天海)이니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북방 천해부근에서 남방 웅족의 땅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며 그 북방계 몽골리안 들은 환한 빛을 숭상하여 '환한 부족' 즉 '환족(桓族)'이라 했다. 이 '환족의 지도자'가 바로 '환한님'이었고, 이 '환한님'은 '화나님 >하나님', 또는 '한울님, 하느님'이 되었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 속에 있고, 이는 또한 '환님'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한자 이두의 기록으로는 '환인(桓因)' 이 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상을 보더라도 하늘백성 3천명과 함께 내려오신 환숫님이 토착민인 곰 족과 결혼해서 밝달임금(檀君)을 낳았다는 우리의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닌 사실역사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5. 桓因이 아니라 '桓國'이라는 말에 대하여
'桓因'이 '원본에는 '桓國'이었는데 일본인들이 桓因이라고 변조했다.' 라 주장하며 그 원본은 조선 후기 남구만(南九萬 : 1629~1711)의 『약천집』에 '『삼국유사』가 『삼한고기』를 인용했는데 양쪽 모두 '桓國'이라고 되어 있다.'는 내용이 발견되고, 『修山集』에도 '朝鮮之初。有桓國帝釋庶子桓雄。受天符三印'이라는 내용이 있다“ 했다
그러나 이 조선 초기에 환국 제적의 서자 환웅(朝鮮之初有桓國帝釋庶子桓雄)이라는 말이나 옛날에 桓因(帝釋을 이름)의 庶子 환웅이 있었으니(昔有桓因 <謂帝釋也> 庶子桓雄) 이나 이두 상 그게 그 말이니 이를 따진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6. 庶子에 대하여
지금 庶子라 하면 흔히 첩의 아들로 보니 桓雄이 庶子라면하느님 또는 환국 제석의 첩의 아들쯤으로 보면 큰일 난다. 하느님 당시에는 아직 결혼제도가 없었고 사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근친상간을 피하려 사내들끼리 모여 군사훈련이나 씨놀음(씨름) 하는 장소가 따로 있었으며 그 장소를 무리아들 동네 즉 서자부(庶子部)라 한다는 말이 우리 사서 여려군데 쓰여있고 미 보스턴 박물관의 청동유물 그림도 많다.

조선 유적지에서 출토된 보스턴 박물관의 청동기유물









위 그림 우 측 하단의 금문을 해독해 보면 이는 우수한 자식을 낳기 위하여 씨놀음을 한다는 말이며 금문 施자만 봐도 씨놀음을 하겠다고 장터에 깃발까지 달고 선전했다.
그래서 씨놀음에 이긴자는 아래 청동기 사진같이 벌거벗고 엎드린 여인에게 씨를 전하는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씨를 전하는 일은 은밀히 하는 것이 아니라 판정관인지 왕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했는데 그 왕의 옷이 풀치마라는 점이니 하느님 환웅 단군이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화려한 궁궐에서 살았으리라는 꿈은 깨야 한다.


역시 첫 조선 유적지에서 출토 된 미 보스턴 박물관의 청동기유물









즉, 우리 선조들은 씨놀음을 통하여 기형아나 무지랭이 들의 씨는 전수시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도 건강한 건 아닌지?
하여간 5.000여 년 전 선조들의 성생활을 두고 현재 우리가 이조 500년의 타성에 젖은 현재의 예의와 도덕이라는 잣대로 비도덕적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庶子란 첩의 아들이 아니라 무리마을 사내들이다.



7. 桓雄
먼저말한 북방계 몽골리안은 환한 햇빛을 숭상해서 환한님 > 한한님 > 하나님이 됬고 그 무리아들은 당연히 환숫이다. 여기서 ‘숫’ 이란 지금은 짐승의 숫컷에서나 쓰는 천한 이름이지만 이 숫에서 스승, 스님 등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 시작될 무렵에는 위대한 명칭이었다.



8. 熊
여기서 熊은 당연히 熊女 이고 계집은 세월네 네월레 하는 ‘네’ 이며 우리 숫자 ‘넷’ 도 계집이니 우리말로 熊女는 ‘곰네’ 이다.
그런데 이 ‘곰(熊)’은 큰곰인 비(?) 자를 쓰지않고 작은곰인 웅(熊)자를 쓰고 있는데(小曰熊, 大曰? - 訓蒙) 이 ‘곰’ 은 다른 나라에 사는 거대한 불곰이나 회색곰이 아니라 우리 산야에만 사는 작고 검은곰(반달곰?)일 것이다. 따라서 곰네족은 이 작은 반달곰을 그 부족의 토템으로 삼았을 것이다.



9.마늘과 쑥을 먹으면 왜 샤람이 되는가?

첫조선 개국지에 내려오신 환숫께서는우선 그곳에 짐승과 같이 살고있던 토착민 곰족과 호랑이족을 교화 시키는 일부터 했다. 이 교화의 첫 단계가 풍토병인 싸스와 같은 괴질로 고생하고 또 벌래등 해충에 물리어 몰골이 말이 아닌 그들을 치료 하는 것 이었다.



즉 미국인 같았으면 이미 그땅에 살고있던 인디언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자기네 나라를 세웠을 테지만 환숫께서는 병고에 시달리는 그들을 치료하여 그들과 동화하려 했고 이것이 하느님 천부경 교훈속의 홍익인간 이었다.

그래서 환웅은 약이라고는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그들에게 우선 마늘과 쑥을 먹으라 했다. 즉 그래도 환웅은 어떤 풀에는 어떤 약효가 있는지 알았을 환웅은 마늘에는 강장효과 등이 있고 쑥에는 여자들 냉증이나 피부 미용에 좋다는것 등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마늘과 쑥의 약효는 지금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지독한 마늘과 스디쓴 쑥을 먹을 그들이 아니었다. 이때 곰족추장의 딸과 호랑이족추장의 딸은 자기들과는 너무나 멋있게 생긴 환숫을 사모하여 아이 낳기를 원했다.(아직 결혼제도가 없었으니 결혼이 아님)

환숫은 그들에게 ㅇ 같은 동굴속에서 ㅁ 과 같은 마늘과 ㅅ 과 같은 쑥을 먹어 사람같은 사람이 되면 아이를 나게 해 준다는 조건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호족 추장딸은 그 지독한 맛을 참지 못하고 도망갔으나 환숫을 너무 너무 사모하여 아이 낳기를 간청하던 곰족 추장딸은 환숫의 말이라면 쥐약 이라도 마다 할 것인가? ㅎㅎ.

결국 곰네는 약속을 지켜 드디어 미스코리아...아니 미스 조선이 되고 따라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라는 사람 말 까지 하니 바로 사람이 되어 새나라 임금 감인 단군을 낳았고 이것을 본 곰족들은 다투어 마늘과 쑥을 캐었고 그러다보니 마늘과 쑥 값이 폭등...아니지 마늘, 쑥은 뿌리조자 없어질 정도...

따라서 환숫과 같이 왔던 무리도 모두 곰족과 동화해 우리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즉 천신족인 환숫은 지신족인 곰네와 동화해 인신인 단군을 낳았고 그뒤 그 지독한 마늘과 쑥을 먹는 민족은 오직 우리 한민족뿐이었으며 그래서 지난번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싸스가 한국인은 단 한명도 걸리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제 일차 홍익인간이 이 지상에 펼쳐진 첫번째 위대한 사건으로 당시 주민들은 일년 내내 축제를 벌렸고 그래서 그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환숫과 같이 숫 이 강한 코뿔소를 모델로 술두르미를 만들었는가 하면 그 속에 그 내용을 기록해 둔 것이다.



10. 弘益人間
우리의 홍익인간 이념은 헌법 교육법에도 써 있고 글자 해석대로 “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 말씀이 글자가 없던 시절 하느님 말씀 어디에 쓰여 있는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弘益人間 이란 말은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 하나 둘 셋 ...열의 아홉 열이며 최치원의 하나 둘 셋 ...열 예찬시 81 자중에, 즉 이두로 써진 예차찬시 81 자 중에 一積十鉅無?化三이 있고 이 뜻을 역시 이두로 풀어보면 “ 하나를 쌓아 아홉이라는 씨족이 완성되면 열고 나가 다른 종족과 다문화 가정을 이루라는 말이고 그래야 종족도 우수해지고 피의 전쟁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니 그래서 환숫(桓雄)은 곰족과 동화하여 밝달임금(檀君)을 낳고 우리 민족을 세웠던 것이다.



11. 太白山頂
이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太伯山頂(太白今妙香山)이라 토를 붙여 놓았다.
그러나 그 妙香山은 직금 북한의 묘향산이 아닐 것으로 본다.즉 홍산문명만 보더라도 첫 조선의 개국지가 한반도 일수가 없기 때문이고 발해만을 끼고도는 중국 대륙 어느 곳일 것이다.



12.神市
삼국유사에는 “환웅께서는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정(지금 묘향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神市’이라 일렀고 그분을 환웅천왕이라 일렀다.(桓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太白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是謂桓雄天王也) 라는 말이 있으니 神市는 환웅이 다스리던 나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그러나 神市의 읽기는 ‘검불’ 즉 ‘검부락지’이고 첫 조선의 서쪽등 대다수의 중국 땅은 사막인데 비하여 홍산 문명이 발달했던 곰족 땅은 검부락지가 자랄 수 있는 검은 땅 이었다. 이 말은 추정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쓰던 말에도 나타난다.즉 삼국사기에 神市의 뜻을 말하는 부분에서 삼국인들은 烏也, 鐵也 했는데 烏는 물론 까마귀이고 검다는 뜻이 있으니 검은 땅이고 鐵은 가마솟이 떡철이니 검은 것을 鐵로도 사용해 말 했다.이런 말들 역시 이두인데 당시 삼국인들은 우리말로 까마귀, 쇠로 말 했으나 그 말을 적는 사관은 烏也 鐵也라 적은 것 뿐 이고 삼국사기를 쓴 부식은 그대로 적을 수밖에 없으니 그 이두를 해석해 보지 않으면 그 뜻을 모를 것이다. 따라서 神市는 나라가 아니고 곰족의 검은 땅이고 또 환웅의 나라를 어떤이들은 배달(倍達) 이라 하는데 이 배달 역시 밝달임금의 나라 ‘박달’에서 우리말에서 거의 붙은 접미사 ‘이’ 가 붙어 배달이 된 것이니 환숫은 밝달임금의 나라 기초는 잡아 주었을망정 어떤 나라를 세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밝달임금(檀君)이 첫 도읍지 아사달(阿斯達)> 앗선 에서 세운 나라는 무엇인가? 이는 아사달에서 선 나라이니 당연히 아사선 > 앗선 이 될 것인데 우리말 아시 갈이 아시 빨래 등으로 보았을 때 아래아점 아사, 아시는 처음이고 이를 한자 이두로 적자니 朝鮮이된 것이다. 즉 朝는 하루의 처음이니 朝를 쓴 것이고 鮮은 그 음만 빌려 쓴 절름발이 이두이니 우리가 아침이 조용한 나라, 아침이 신선한 나라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말이다.

하여간 朝鮮이 우리 첫 나라가 된다면 그 전 우리 종족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 종족은 원시에는 굴에서 살았으며 입이라는 굴 속에 먹거리를 넣고 구린내가 항문에서 나오는 냄새이듯 항문이라는 굴로 배설했으며 여음이라는 굴 속에 씨를 뿌리고 자궁이라는 굴 속에게 자라 그 굴을 나와 역시 굴 속에 살았으며 죽어서도 굴 속에 묻혔으니 우리 종족 이름은 굴 > 구리였고 이 굴 속에서 생식했다는 말은 신지녹도문 [진보천부경] 하나 둘 셋 ...열 중 다섯에도 나온다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열 중 다섯의 ‘다’









이 신지녹도문에서 위 그림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굴 이고 그 밑의 ㅅ 은 사람이 산다는 말인데 역시 금문처럼 요점만 그린 그림이니 이를 다시 그려 보면 아래와 같다.









또 평지가 아니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홍수, 또는 적이나 맹수를 피하기 위하여 일 것이다.



또 우리 뿌리 말을 보자
'구의'는 현재 '관청'이고, '공공기관'이며 (구의官, 구의公:훈몽) '구슬아치'는 '벼슬아치' 이고, '구의하다'는 '소송하다'이다. 여기서 굴이나 그의등 아래아점으로 쓰던 말이 좀 다르다고 토는 달지 말아야 한다.
또 '구실'댄다는 '핑계된다'는 말로 변명이니 소송의 피고가 하는 말이며, '구슬 바친다'는 구슬은 구슬 玉 자이니 지금 玉을 구슬이라 한 원인이 밝혀지며, 이는 아마 돈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 그 때는 '구슬과 같이 예쁜 돌로 굿 하는데 바쳤던 것 같다.
또 '구슬리다'는 '구슬을 주어 마음을 움직이게 하다'이다.

그런데 '구실'은 '굿 일 >구실', 즉 '굿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굿은 누가 어디에서 하는가? 물론 무당이 굴 속에서 한다. 그러니까 당시는 굴 속에서 무당이 판사, 검사는 물론 행정관까지 다 해먹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 어떻게 무당이 판검사는 물론 행정관까지 다 해먹을 수 있단 말인가? 환웅, 단군은 모두 화랭이였고, 화랭이란 현재 국어사전에 男巫, 즉 '남자 무당'이다. 이는 국가 통치와 제천 의식을 함께 하던 그 시절에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인제정(一人祭政) 일체풍속 (一切風俗)은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제천 의식은 삼시랑(三侍郞)에게 분리되고, 또 전국에 파견하여 제정을 다루게 하였으며, 이 단군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파견된 삼시랑들은 불교가 들어오면서 부터 '거지 삼시랭이' 같은 말로 천시되었고, 삼시랑 들은 창피하지만 그렇다고 그 직책을 버릴 수도 없어 그의 부인이나 며느리, 딸들에게 전수하였던 것이 1960 년대까지 진도 지방에 살아남아, 주민들의 옳고 그름 판단과 굿 하는 일, 자녀 혼사날이나 심지어 굴뚝 고치는 날까지 그들이 주관했다.
그리고 주민들이 그들에게 바치는 성의 표시로는 벼 때 벼 한 말, 보리 때 보리 한 말 내고는 애들 고뿔만 들었어도 찾아갔으니 지금 '단골'이란 바로 '당골'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 세습무(世習巫)인 당골레가 없어지자 그것을 흉내내는 강신무(降神巫)가 그들을 대신한 것이고, 이것이 현재 무당이고 그들은 단군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으니 푸닥거리 등 완전 미신 짓만 한다.



이 우리가 굴에 살았다는 말의 객관적 증거는 중국 문헌에도 있다.
진서 [동이전]에 의하면 애초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은 여름에는 나무 위의 깃에서, 겨울에는 굴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夏則巢居冬則穴處 - 晋書 東夷傳)
또 이 말에 대한 근거는 [삼국지]에서도 나온다.
‘...보통 거주하는 굴 구멍의 큰집은 깊고, 사다리는 아홉 개까지 있는데 이는 많을수록 좋다(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 즉 한 동굴 속에서 많은 사람이 살면 더 좋다는 말이니 당시 사람은 요즘처럼 일 가구 일 주택을 선호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것을 더 즐겼다는 말이다.

또 중국인은 한자로 '구리' 표현을 '구려(九黎)', '고리(藁離)', '구이(九夷)'라 하였다.
? 왕동령(王桐齡)이라는 중국 사학자는 [이십오]>를 인용하여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였고, 구려는 옛날 천자의 이름(古天子之名)이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고 했다.
? <위서(魏書)> 에는 '고리(藁離)에서 온 동명(東明聖王)이 세 사람을 만나 흘승골(訖昇骨)에 이르렀다'라는 말이 있다.
? 후한시대後漢時代의 공안국孔安國도 '구려의 군주는 치우 이다.(九黎君號蚩尤是也)'라 하였다.
? [이십오사] 에서는 '구이(九夷)'라 하였다. 이 이외에도 우리 종족이 구리라는 말이 많지만 생략하고 여기 우리말을 한자로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이두로 흉내 낸 것만도 다행이고 따라서 앗선(첫조선) 전의 우리 종족이름이 ‘구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며 고구려, 고려 역시 이 구리에서 나온 말이고 이 말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도 들도 쓰던 말이며 지금 우리에게도 멍텅구리, 작난꾸러기 등에 남아 있다.


13. 神壇樹
이 신단수(神壇樹)가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산상웅상(山象雄常)과 소도(蘇塗)와 지금 서낭나무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산해경]의 '北有樹名曰雄常先八代帝於此取之'를 저 유명하신 안호상 박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고 [한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 박사는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한단고기 201쪽) 이 산상웅상이 한자로 山像雄常이라고 써 있으니까 한자 해석대로 '山 형상의 숫컷 형상'이라고 한자 뜻으로 번역하려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서 낮은 산은 '뫼' 라 했지맍 높을 산은 '오름'이라 했다. 지금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오름세가 '위세오름'인데 이 '오름'이 바로 우리말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글에서 山은 무엇인가? 우리말 '산'이란 400년 전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丁을 '산 丁'이라 했으니 장정(壯丁) 젊은 '사내'를 그냥 '산'이라 했다 .즉, 산에 접미사 ‘애’가 붙어 산애>사내가 단축된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한글이 없었으니, 아니 원시한글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이 우리 원시한글로 자기네 글들을 쓸 수도 없었겠지만, 이는 틀림없이 우리 발음 ‘사내 >산’ 을 그 발음을 따 '山'으로 적은 이두이다. 그렇다면 늙은 남자나 애들은 왜 '사내'가 아니란 말인가? 이는 발기할 수 있는 숫(남근)을 가진 자가 바로 '사내 >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 [산해경]의 대석학들도 풀지 못한 '山象雄常'의 비밀은 풀린다. 이것이 바로 '남근 형상의 숫이 恒常하는 것, 常態, 常形'이란 말이고, 이것이 당시 얼마나 귀중한 신앙이며 기도의 대상이었는가는 그 웅상을 만들어 기도한 우리 민족이나 이 웅상의 풍속을 중국의 8 대 제왕들이 취해 갔다는 기록(先八代帝於此取之)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14.소도(蘇塗)
한자의 뜻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이두로 우리말로는 ‘솟터’ 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솟았겠는가?
중국의 객관적 글을 보자 중국의 이십오사(二十五史)를 보면 ...평소 오월달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 지어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 낯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인 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고 몸을 업드렸다 일어났다 하며 손발로 장단을 맞추는데 장단은 중국의 탁무(鐸舞?)와 유사한데가 있다. 시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역시 이같이 귀신을 믿는데 나라의 읍마다 각기 한사람씩 세워 천신을 주제케 하며 그 이름을 천군(天君) 1) 이라 한다. 또 모든 나라에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름을 '소도(蘇塗)라 하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2) 귀신을 섬기는데 어떤 도망자건 그안에 들어가면 대개 싸움을 할망정 돌려주지는 않는다. 그 소도를 세운뜻은 부도(浮屠)와 비슷하나 옳고 그름 행하는 바는 다름이 있다. (...常五月下種訖祭鬼神群聚歌舞飮酒晝夜無休其舞數十人俱起相隨踏地低昻手足相應節奏有似鐸舞十月農功畢亦復如之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蘇塗立大木懸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而所行善惡有異...)
1) 천군 - 무속에서 무당을 만신(萬神) 또는 천군(天君) 이라도도 하는데 이는 단군(檀君)과 같은 뜻이다. 2)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 뒤에도 수없이 나오지만 환웅은 '숫'을 의미하므로 환웅상은 남근일 수밖에 없으며 북 등은 고환을 그리고 방울은 '알' 즉 '씨앗' 등을 상징 한다.

15.쎅스하는 서낭나무
곰네(熊女)가 신단수(神壇樹) 아래에서 아이 배길 빌었다는 신단수도 바로 '남근상'이고, 이는 다시 '소도(蘇塗, 솟터)' 안의 솟대가 되며, 이 신단수, 솟대, 산상웅상 등은 서낭당의 당집에서(사전의 城隍堂은 잘못된 표현) 삼시랑(三侍郞)이 지키던 것이 지금의 서낭당으로 전래되어, 6.25때까지만 해도 동네어귀 산등성 고개 위 큰 나무에 새꼬래미 줄을 두르고, 그 새꼬래미에 오색실이나 천 등을 찢어 끼워 나무둥치에 둘렀고, 나뭇가지 위에는 곡식자루나 북 같은 것을 달았으며, 그 나무둥치 밑에는 돌무더기를 쌓아 놓았는데, 이는 '여음'이므로 지금 민속촌의 나뭇가지에 건 오색 천들은 잘못된 것이고 나무둥치에 둘러야 하며 그 나무아래 돌로 여음 상을 싸야 한다.
따라서 6.25 때 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남근이 바로 여음에 삽입한 상'을 만들어놓고 오가는 사람들이 절을 했던 것이다.



이 우리가 남근상을 바뜰어 모셨다는 기록은 금문에서 수도 없이 많다.











이는 우리 민족뿐 아니라 우리와 뿌리를 같이하는 지금 바이칼호 부근의 에벤키족이나 부라이트족, 그리고 몽골 등에도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의 이름을 '오보'라 한다.
그런데 이 '오보'란 바로 '옵'으로써 우리말 '업 >어비'와 모음이 혼동된 말이니 이렇게 남근을 숭배한 민속의 풍습에서 아래 남근을 손으로 받드는 위그림 글자는 당연한 것이고, 이렇게 보아야 위 금문이나 앞으로 전개될 [신지녹도문 천부경] 하나 둘 셋 ...열 해독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16. 天符印三箇
이는 물어볼 것도 없이 당시 가장 중요했던 天地人 ㅇ ㅁ ㅿ 이고 이는 우리 ㄱㄴ ㄷ ...ㅎ의 모체가 되며 글쓴이는 이 ㄱ ㄴ ㄷ... ㅎ의 뜻 풀이를 [천부인 ㅇ ㅁ ㅿ] 으로 책을 냈다



17.금문과 갑골문에 대하여
여기서 혹자는 중국인들의 주장대로 갑골문이 먼저고 금문은 그 후라고 하는데 다음 금문 갑골문을 보면 그런 오해가 풀릴 것이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즉 우리 상식으로 하늘은 둥글고 그 주인인 해는 점으로 표시 했는데 갑골문 은 모가 지게 표시하다가 현재 日자를 만들었으니 어느 것이 먼저 일 것 같은가? 따라서 한자에는 ㅇ 과 같이 둥근 글자는 없다. 다른 금문, 갑골문 사전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금문을 계속 쓰지 않고 가림토의 원조인 신지신획(神誌神劃)등을 만들어 썼으나 중국인들은 그 배워야한 하는 가림토 보다 그대로 그림인 금문에 자기네의 음을 붙여 발달시킨 것이 갑골문(甲骨文) 소전(小篆) 대전(大篆) 예서(隸書) 해서(楷書) 그리고 지금 한자는 삼국때나 들어와서 고려때 정착 되었다.
따라서 한자는 우리 글자라고 하는 말은 미국 자동차 박람회에 가서 '달구지의 원조는 우리 이니 자동차의 원조다' 하는 말과 같다.



18. [진본천부경]은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 ...열 이고 최치원의 81자는 그 예찬시

하느님이 환웅에게 준 것은 한울글자 천부인 뿐아니라 그 한쌍이 되는 한울 소리 천부경도 되므로 천부경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천부경 하면 흔히들 최치원의 81자로 아는데 81자는 한울소리 신지녹도문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의 예찬시이지 천부경은 아니다. 이 모든 글을 자세히 쓰려면 책 두권도 모자르므로 요약문만 쓴다.



한울글자 천분인과 한울솧리 천붑경은 한 쌍











한울소리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하나 둘 셋 ...열 요약정리.
1) 하나 : 하늘이며 하늘의 주인인 해 가.
2) 둘 : 누리에 둘리워
3) 셋 : 사내이며 사내의 ‘숫’을 세우고
4) 넷 : 사내의 너인 겨집을 만들어
5) 다섯 : 땅위에 교합 시켰으니
6) 여섯 : '어미'되어 번성하여라.
7) 일곱 : 사내는 일구어
8) 여덟 : 처자식의 집을 만들고
9) 아홉 : 씨족의 울타리가 완성되면
10) 열고 나가 다문화 가정이 되라.

이 신지녹도문 읽는 방법은 같은 붃한 영변지의 자식을 많이 낳게 해 달라는 평양 법수교아래 기천문(祈天文)이나 창성조적서비(創聖鳥跡書碑)그리고 환숫족과 곰네족이 결합하고 축제를 벌인 코뿔소 술두르미 글과 응국묘지에서 출토된 도자기 금문 해석과 같은데 이는 글쓴이 졸저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 열에 있다.



19. 이두로 써진 최치원 81자 요점 정리
1) 一 始 無 始 一
'하나' 인 빛은 시작이 없는 데서 '빛'이 시작 되고




2) 析 三 極 無 盡 本
분석하면 삼극 ㅇ ㅁ ㅿ인데 근본은 다함은 없다.



3)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하늘(ㅇ) 의 첫째, 핵심인 '빛'이 땅(ㅁ)의 핵심에 둘리어 사람의 핵심(ㅿ)인 사내를 세웠나니




4) 一 積 十 鉅 無 ? 化 三
빛이며 사내의 씨가 누리인 겨집에 나리고 싸여 씨족의 울타리가 차면 이를 열고 걸림이 없는 사내(神)로 승화하라.




5)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하늘(ㅇ)은 땅(ㅁ)이 둘러서 세워지고 땅도 하늘이 둘러서 세워지며 사내도 겨집이 둘러서 사람이 세워지니



6)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大三인 새내와 계집이 어울으면(合) '어슷'이 되어 일구는 사내와 처자식의 집과 씨족을 낳는다.




7)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사내와 계집을 운용하여 땅에 세우고 사내를 일구게 하여 한 동아리를 이루니




8) 一 妙 衍 萬 往 萬 來
하늘인 빛은 신묘하게 만 번 오가도




9) 用 變 不 動 本
쓰임새는 변하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10) 本 心 本 太 陽 昻 明
본심은 해오름을 근본으로 밝음을 우러름에 있나니




11) 人 中 天 地 一
사람 (ㅿ) 가운데 천(ㅇ)지(ㅁ)의 '빛'이 있으며




12) 一 終 無終 一
하늘(ㅇ) '빛'은 끝이 없는 데서 하늘의 '빛'이 끝난다.


최치원은 이렇게 우리 글자가 없어 할 수 없이 한자를 빌어다가 절름발이 이두로 81자를 써 놓고 당시 세태에 피눈물을 흘리며 먼 후세에 가림토가 제대로 복원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시 秋夜雨中에 나타



20. 최치원이 81자를 쓴 다음 괴로운 심정을 표현한시 秋夜雨中.

秋夜雨中.



1)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오로지 괴로움을 읊어봐도
최치원은 성자다. 그런 이가 여자가 그리워 괴로워했을 리도 없고, 또 당시는 임금님이나 나라 때문에 걱정할 시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 예찬시 81자를 쓰기 전 우리말과 우리 글자 가림토를 다 없애고 오직 한자에 미쳐 도는 당시 선비들에게 아무리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이 바로 우리 하느님 교훈이며 그 내용이 하나, 둘 ,셋... 열'이라는 것을 설명 해봐도 아는 사람이 없어 괴로워한 것으로 보인다.

2) 世路少知音
세상에는 그 소릴 아느니 적네
그러니까 세상에는 그 소리를 아는 이가 참으로 적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여자를 그리워했다면 世路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

3) 窓外三更雨
창밖에는 밤늦도록 비만 오는데
역시 괴로운 마음을 가을비로 표현하고 있다.

4) 燈前萬里心
등불 앞에는 머나먼 마음뿐
최치원의 천부경 81자, 그러니까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전자 16자가 하나, 둘, 셋... 열 인 것을 알고, 이것을 우리말이 아닌 한자로는 도저히 풀 수 없으니 다시 이두 형식의 시첩으로 갱부작첩(更復作帖) 하여놓고 만대 후의 알아줄 이를 기다리며 지은 시로 본다.
여기서도 만약 최치원이 여자가 그리워 이따위 시를 썼다면 萬里心과 같은 말이 등장할 리 없다. 누가 만리, 먼 세대 후에 최치원이 여자가 그리워 이런 시를 썼다고 동정할 것인가?

이상 하느님께서 새 나라를 세우려는 환숫께 주신 한울소리 [신진녹도문 천부경]의 그림과 뜻, 역시 함께 내려주신 한울글자 [천부인],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당시 쓰던 그림글자 금문과 역시 선조들이 그려놓은 명마산 글씨바위의 글자, 그리고 최치원의 이두로 써진 81 자 풀이로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 해독하여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강한다.



21.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사대서적 이라는데 대하여
단제 신체호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국조소리라 빠지는등 철저한 중국의 사대주의자 이므로 차라리 일연의 삼국유사만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한 사서를 써야 하는 김부식의 입장에서는 허무맹랑한 것 같은, 이두로 써진 기록은 믿을 수 없으니 기록하지 않은것 뿐이고 이보다 136 년 늦은 일연은 이미 이두가 정착한 시기인데다가 역사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니 신비한 말을 골라쓰더라도 아무 책임감이 없었을 것이라 본다.



우선 김부식의 말

“...항차 신라·고구려· 백제는 개국 때부터 삼국으로 우뚝 솟았고, 중국과는 예의로 관계를 맺어올 수 있었습니다. 범엽의 [한서]와 송기의 [당서]에는 모두 열전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있지만, 고구려 백제에 대해서는 소략하게 다루어 상세한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삼국의 기록은 문장이 거칠고 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적들이 누락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임금과 왕후의 선악, 신하의 충성과 간사함, 국가사업의 평안과 위기, 백성의 안녕과 혼란에 관한 사실들이 후세에 교훈으로 전하여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재능과 학문과 견식을 겸비한 인재를 찾아 권위 있는 역사서를 완성하여 자손만대에 전함으로써 우리의 역사가 해와 별 같이 빛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은 원래 훌륭한 인재도 아니며, 심오한 지식도 갖추지 못한데다가,...”
(...況惟 <新羅> 氏· <高句麗> 氏· <百濟> 氏, 開基鼎峙, 能以禮通於 <中國> . 故 <范曄> 『漢書』· <宋祁> 『唐書』, 皆有列傳. 而詳內略外, 不以具載. 又其古記, 文字蕪 , 事迹闕亡. 是以君后之善惡, 臣子之忠邪, 邦業之安危, 人民之理亂, 皆不得發路以垂勸戒. 宜得三長之才, 克成一家之史, 貽之萬世, 炳若日星. 如臣者, 本非長才, 又無奧識....)

따라서 김부식은 그 삼국 사관들이 고구려 초 성벽이나 광개토대왕 비에 써져 있듯이 삼국 초 우리 어순으로 써진 한문 문장은 우리말 어순이므로 문장이 거칠어 보이고 고려 김부식 당시는 한문의 문장이 정착된 시기 이므로 삼국초 쓰여진 문장은 졸렬하다 한 것이다

또 그 삼국인을이 쓰던 국조 이야기를 사관이 이두로 썼으니 우리 국조 하느님이 환인이 되는가 하면 환숫이 환웅이 되고 밝달임금이 단군이 되는가 하면 그가 아사달 > 앗선에서 세운 아사선> 앗선이 조선 등이 되니 정확한 국사를 써야하는 김부식 입장에서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 신라인 들은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 ...열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교훈을 환숫과 곰네가 따르는 것을 알고 이를 말끝마다 사용 했는데 그 말을 적는 사관(史官)은 우리 글자가 없으니 중국의 한자를 빌려다 이두로 적었고 그 기록을 참고하여 우리 역사를 적어야 하는 고려 때 김부식은 할 수 없이 그 기록을 따라야 하니 삼국사기에 우리 국조의 이름이나 밝달임금, 또는 조선(朝鮮) 소리가 빠진 것이나 그 후 160 여년 후 중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그 이두도 정착된 시기이나 [삼국유사] 에는 단군과 조선 소리가 등장하고 우리는 그제야 단군과 조선 이 우리 역사의 시원이 되는 줄 안다.
따라서 이 기록만 보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우리의 국조가 빠졌으니 차라리 일연의 삼국유사만 못하다는 단제 신채호의 삼국사기 폄하는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2. 산해경의 조선이란 말
[산해경]이란 언제 써진 책이기에 조선 소리가 있는가?

山海經)은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집, 지리서로, 곽박(郭璞, 267~324)이 기존의 자료를 모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본래 산해경은 인문지리지로 분류되었으나, 현대는 신화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산해경은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뉘며, 중국 각지의 산과 바다에 나오는 풍물을 기록하였다. 내용 중에는 상상의 생물이나 산물이 있어서 지리서라고 하지만, 전설 속의 지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 [사기]에서 사마천은 감히 말할 수 없는 기서라고 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산해경> 은 기괴한 동물이 나오는 기서일 뿐이며 연대도 곽박은 267~324년 진나라 때 사람이고, 이 곽박이 정리한 [산해경]은 또 정정되어 우리에게는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때까지 주를 달고 수정을 거듭하였으니 과연 우리의 첫 국가 이름을 말하는 우리의 상고사에 참고할 만한 사서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 산해경의 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 ?人愛之 즉 조선 천독인들은 물에 살며 남을 의심하지 않고 사랑한다 는 말에서 천독(天毒)이나 수거(水居)라는 말은 무엇인가 알아 보자.
天- 하늘천
毒- 독약 독.
天毒 - 하늘의 독? 이게 말이 되는가? 그 의심치 않고 남을 사랑한다는 그 조선인들이 하늘의 독인가?
天毒은 한자의 뜻으로는 해석이 않되는 이두 말이며 이 이두는 중구남방으로 썼던 삼국시대 이두가 아니라 신라 말 설총이 정리한 세련된 이두이다.
즉 天에서는 뜻을 따고 毒에서는 음을 땄는데 독 이란 우리 장독대의 그릇 중 가장 큰 그릇이 독을 의미하기 때문에 天毒이란 하늘을 담는 큰 그릇이란 말이며 또한 하늘 둑 에 산다는 말이고 水居는 물에 산다가 아니라 물처럼 순리대로 산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조선이나 천독은 다 고려때 개필된 산해경 본이다.
또 그 산해경이 개필되지 않았다 하더래도 그 저자 곽박은 267~ 324 진나라때 사람이니 밝달임금의 의 나라가 조선이란 말의 보증은 되지 못한다.



23.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하여
원본은 환국(桓國)인데 일제에 의해 환인(桓因)으로 왜곡 되었다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다른 민족의 다른 나라인가?
이 글은 평양 출판사간 한국문화사 영인 북한 어문사학자 김수경의 [고구려, 백제, 신라 언어연구]를 그대로 영인 하듯 쓰고 글쓴이의 의견을 달았다.
이 글의 대략적 취지는 지금 이남의 리기문(李基文)교수, 김완진(金完鎭)교수 등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완전 다른 말을 쓰는 다른 민족이었다는 것이며 이숭령(李崇寧)교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어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방언의 종별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코 외국어의 관계가 아님을 알아야 한 다 면서도 삼국어가 같다는 어떤 뚜렷한 증거는 제시 하지 못하고 있다.



1) 이기문 교수.
* ...오늘의 국어가 단일어임으로 고대에 있어서도 고구려 백제신라의 언어가 단일 했으리라는 선입견에 지배 되어온 것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비판 되지 않으면 안 된다(국어사 개설 1961년 초판, 개정판 1972년 서울 32 페지)
*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언어의 단일성은 통일 신라 이후에 성취되기 시작했던 것이다.(한국어 형성사 서울 1967. 75 페지)
* ...종래 우리 학자들은 현대, 또는 중세 조선어가 단일 언어라는 사실에서 고대의 신라, 백제, 고구려의 언어도 단일 했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러나 가령 고구려 인명 및 지명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우리는 그것이 신라어와는 다른 언어였다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필자는 10 여 년간 고구려 자료를 연구한 결과 자못 흥미 있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는 위에서 말 한 바와 같이 고구려어는 신라어와는 다른 언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다른 언어 이기는 하지만 고구려어는 신라어와 상당히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한국말의 조상 ‘ 월간중앙’ 1973 년 3 호 234 페지)



2) 김완진(金完鎭)교수.
한국어 발달사(음운사)의 저자 김완진 교수는 “이제는 삼국시대 국가의 언어가 서로가 상당한 차이를 가진 다른 말로써, 방언들이 아닌 다른 언어들 이었다는 것으로 상정하는 일이 일반화 되었거니와...” (한국문화사대계 V.159 페지)



3) 이숭령(李崇寧)교수.
* 이숭령 교수는 한국 방언사에서 [고대 국어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어 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방언의 종별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코 외국어의 관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한국 문화사 대계 V 345 페지)
* ...백제어에 대하여...고구려와 동일한 언어라기보다는 피차 가까운 언어라고 보아야 한다.
* ...백제는 본시 남방계인 마한 어에, 남하하여 세력을 잡은 부여계의 언어가 우세하였으나 마한 어와의 사이에 언어 투쟁으로 혼효와 수정이 나타났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리숭령 한국방언사, 한국 문화사대계 V 347 페지)



글쓴이 구길수 분석.
이상을 보면 이기문 교수는 가설이라 정해놓고 고구려 신라 말이 다른 말 이라 했으나 김완진 교수는 이를 확정해 놓고 삼국 어는 완전 다른 말이라는 것이니 그렇다면 삼국은 완전 이민족이 살았던 것이 되고 이런 주장이 일반화 되었다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했는가? 그 근원은 일제 식민사학으로 올라간다.

일본의 역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는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말 했다.
“ 고대 조선에서 남북으로 민족이 달랐으며 언어 지명도 달랐었다.”
이것을 최초로 지적한 사람은 쯔보이 구마조(坪井九馬三) 박사였다. (고대조선의 문화경역- 조선학보 제 24집. 48페지.)
결국 위 삼국은 다른 민족이었다는 학자들은 일제 식민학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 같으니 이는 이병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그 식민사학의 교육을 받은 교수들이 계속해서 그들 식민사학을 전할 것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이 이들이 삼국사기를 인용, 삼국 말이 달랐다는 주장의 근거이나 이 삼국사기 이두를 자세히 풀어 위 식민사학에게 논리적으로 대처한 글을 글쓴이는 아직 읽지 못했다. 따라서 글쓴이는 이 삼국시대 이두를 논리적으로 풀어 위 식민사관 교수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밝히 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말을 찾아 볼 수 있는 기록은 오직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이고 그것도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이며 그 자료가 너무 부족하나 이것은 대개 이두로 써져 있음으로 이두로 풀어 보면 당시 사회상과 당시 말을 대강 짐작해 삼국 말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고구려 벌이라는 말 忽.
*忽本(홀본), *買忽(매홀), *召尸忽(소시홀), *奈兮忽(나혜홀), *沙伏忽(사복홀), *馬忽(마홀), *烏阿忽(오아홀), *也尸忽(야시홀), *伏忽(복홀), *內未忽(내미홀), 등등

忽(홀) -소홀히 하다, 갑자기, 부리나케 돌연, 다하다, 멸하다, 말하다 등의 뜻으로 이두 상 부리나케의 부리는 아래아점으로 하면 불, 벌이다
단 여기서 벌 이란 평지 들판이 아니라 산비탈, 언덕 등도 다 포함되나 당시는 강이나 내는 벌이 아니었고 물보다 높은 ‘뭍’ 만 벌 이었다.

* 忽本(?本)
忽(홀) - 주몽의 도읍지,
本(본) - 고향, 뿌리 등. 뜻을 취함.
?本(홀본) - 벌 뿌리, 즉 주몽이 나라를 세운 벌의 뿌리란 말이다.



* 買忽(매홀)
買(매) - 물건을 산다. 인데 엉뚱하게 비슷한 뜻으로 산다(生)의 뜻을 차용했다. 그러나 한편 그 때만 해도 말이 적었던 시대로 보기 때문에 살기 위해 물건을 사(買)는 것이나 사(生)는 다 같은 삶 이었을 것이니 같은 글자를 썼을 수도 있다. 뜻을 취함.
忽(홀) - 불이나케 > 벌. 뜻을 취함.
買? (매홀) - 돈 주고 산 벌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벌 > 사는 벌 > 살 벌.



* 召尸忽(소시홀)
召(소) - 부르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하다, 음 ‘소’를 취함
尸 - 죽엄, 시체, 제사 지내 때 신위에 어린 아이를 앉히는 시동(尸童). 음 ‘시’를 취함.
忽(홀) -부리나케 > 벌. 뜻을 취함.
召尸?(소시홀) - 소시 > 솟이 를 음차 한 솟은 벌.
(이하 생략)


6) 백제 벌이라는 말 夫里.
* 彌鄒忽(미추홀), * 所夫里(소부리), * 古良夫里(고량부리), * 古沙夫里(고사부리), * 末冬夫里(말동부리), * 夫夫里(부부리), * 毛良夫里(모량부리),
* 半奈夫里( 반나부리, *波夫里(파부리) 등등



* 彌鄒忽(미추홀) - 온조와 비류의 도읍지.
彌(미) - 두루, 널리, 오래, 그치다 등. 음 ‘미’를 취함
鄒(추) - 周대의 나라이름. 음 ‘추’를 취함
忽(홀) -부리나케 > 벌.
彌鄒忽(미추홀) - 음차로 널리 미친 벌 > 미추 벌
(주몽의 제2 부인 소서노(召西奴, 즉 잘난 계집이라는 뜻의 솟은네가 제1왕비 예씨 소생인 유리태자(瑠璃太子, 누리 태자)가 나타나 왕권을 이어 받고 주몽은 그간 전투의 상처로 병석에 누어있자 누리 태자에게 동조하는 무신들이 소서노의 아들 비류와 온조의 생명을 위협하므로 소서노는 산동반도에 살고 있던 불한, 밝한(弁韓, 卞韓)의 유민들이 바다를 건너와 나라도 없이 사는 지금 서울, 인천 부근 지방으로 내려와 백제(百濟) 나라를 세운다.
이 나라가 百濟인 것은 원래 붉한, 밝한의 뜻은 천지인 삼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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