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를 쓰다 들킨 동무에게 빨간 딱지를 빼앗아 벌을 받게하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더라.그러던 어느날 갑짜기 날아든 일본 천황
아키히토의 종전선언으로 무덤 속으로 묻힌 조선어가 되살아 나
는 기쁨이 찾아온다.
이날은 조선어의 무덤에 피어난 민들레처럼 함박 웃음꽃이 만발
하였으리라.그러나 정작 이 조선어는 삼한어의 하나로 보는 우리말
이고,고구려와 백제에 이어온 북한어의 압제로부터 해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북한어가 왜땅에 전해져서
이미 8 세기경부터 왜에는 가나라는 문자생활이 꽃피어서,우리말의
하나인 북한어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쓸어담긴 것이기 때문이리라.
백제와 고구려 대신에 잘 발달시킨 북한어인 우리말을 왜말이라는
이유로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다시 왜말로 길든 북한어를 삼한어가
거침없이 들이삼키는 덕택을 누릴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
동양천지를 집어삼킬 태세이던 일제가 하루 아침에 패망하는 사태에
이르는데는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 하나가 있었단다.히로시마와 나
카사카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동경에도 떨어진다는 잔잔한 소문에
피난소동이 일어나니,아직 막강한 9000대의 카미카제 비행기와 250
만의 사기충천의 방어군이 무슨 소용이냐고 무조건 항복하라는 신진
세력의 강압에 일제 천황도 무릅을 꿇은 것이란다.
사실 삼한어인 우리말은 정음의 울타리에 갖힌 까닭에 북한어인 왜
말과 달리 문자와는 먼 입말이나 가둔 바닥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형편이었으리라.왜냐하면 정음이 나오고도 그러니 오백여년이나
언문이 한문의 그늘에 눌려 왜말과 같은 발전을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이나마 삼한어가 같은 친족인 북한어인 왜말로 말미암아 풍부한
언어문화를 힘들이지 않고 누릴 수가 있었다니 참 알 수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해방 60여년 동안 한문 문화로 얻는 덕을
모르고, 한글이 무작정 한문을 몰아내는 일에만 메달린 일은 아무래도
잘못이 큰 듯하다.
북한어(왜말)는 삼한어(우리말)에 많은 영양분을 공급하여 준 것이다.
여기서 삼한어라는 표현은 한:많은 한:어(뙤말)와 달리 한문의 자양분을
흠뻑 빨아들이리면서도 까다로운 한자에 메달리지 않아도 좋으니,어찌
보면 북한어(왜말)보다도 크나큰 발전이 기대되는 우리말을 가르킨다.
한어 일어 영어 독어 불어 로어와 같은 한문말로 우리말을 삼한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왜냐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까닭에 남방어인
삼한어가 우리말의 주축을 이루었다고 보기때문이다.
왜의 패망이 비단 그 유언비어 때문만은 아니리라.또한 옛 조선어가
남북으로 갈리기도 한테 섞이기도 하는 가운데 고구려계와 신라계로
자리잡는 동안에 북한어(북방어)는 구결(가나)을 바탕으로 한 이문이
되고, 삼한어(남방어)는 이찰(고전)을 이은 향가와 이두에 물들다보니
자연히 한문의 발꿉에 짓눌린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웠으리라.
조선의 건국으로 새로운 천지를 열어 보이려는 욕심으로 한문 문화에
깊이 잠든 삼한어의 표준화의 기치를 내건 용비어천가를 천하에 선포
하려든 정음창제(정음도 창제의 제도 모두 낡은 문자를 표준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正音과 抑制를 뜻함)야말로 모택동이 공산혁명의 기치로
한어병음과 간자에 의한 문자혁명을 단행한 것과 한치도 다름없다.
중국의 문자혁명은
어느날 남경과 북경이 (nanking)과 (peking)에서
(nanjing)과 (beijing)으로 둔갑하는 ......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정신이 아니고 무어더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