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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 생의 마지막 길 편하게中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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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 생의 마지막 길 편하게中


[기계로 늦춰지는 죽음]

▶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약물과 기계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는 말기 환자. 입에 인공호흡기, 목에 약 공급줄, 복부에 소변줄을 달고 있다. 주변에는 단백질영양제.안정제.전해질 용액.기본수액 등이 담긴 약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난 9월 중순 서울대병원 응급실.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던 이모(84)씨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일년 전 식도암 판정을 받았던 그는 이번에는 심장을 둘러싼 막에 암세포가 퍼져 물이 찬 것이다. 이씨는 물 제거 수술 도중 상태가 더 나빠져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인공호흡기.인공신장.소변줄…. 이씨에게 10여개의 '생명줄'이 연결됐다. 혈압상승제 투여, 피 검사와 기관지 절개술, 혈액투석 등의 각종 시술이 행해졌다. 이씨는 생명줄에 의지하다 35일 만에 숨졌다. 이씨에게 이런 시술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명의 연장인가, 사망 시점의 연장인가. 이씨는 중환자실 신세를 안 졌으면 3~4일 만에 숨졌겠지만 며칠이라도 가족 품에 안겨 따뜻하게 세상을 떴을 것이다. 가족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고 온갖 기계에 둘러싸여 생을 마감한 그였다. 소생 불가능한 생명을 무작정 늘리는 의료행위인 '연명 (延命)치료'. 현대의학의 산물인 이 행위는 의료 현장에서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생의 말년에 주로 찾아오는 암과 뇌졸중, 폐쇄성 폐질환, 심장병, 간경화, 패혈증 등 중증 만성질환으로 매년 20여만명이 죽어간다. 이들 가운데 얼마나 연명치료를 받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병원에서 인공호흡기 도움까지 받는 심각한 연명치료 대상은 3000명 정도로 의료계는 추정하고 있다.

◆ 연명치료의 그늘=지난 10월 초 간경화로 아버지(67)를 여읜 하모(41.회사원)씨는 아버지가 숨지기 직전 연명치료를 중단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치료를 원했다. 고민 끝에 어머니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씨는 ''아버지가 고통을 더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명 치료를 둘러싸고 가족 간 갈등이 벌어졌던 것이다.

지난 10월 말 서울 모 대학병원 암 병동에선 의식이 혼미한 말기 대장암 환자(61)의 보호자들이 ''왜 중환자실로 보내주지 않느냐''며 고함을 질러댔다. ''임종이 가까웠다''고 버티던 의사는 보호자의 성화에 못 이겨 연명치료에 들어갔다. 하지만 환자는 하루 만에 숨졌다. 보호자는 ''환자의 동업자가 해외에서 돌아온 뒤 금전 관계를 정리하려면 최소한 사흘은 더 살려야 한다''며 연명치료를 고집했던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35일 연명치료를 받은 이씨의 유족들은 1000만원 이상의 의료비를 부담했다. 건강보험 재정도 그 이상 들어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1999~2000년 4월 사망한 6만5300명의 진료비를 분석해보니 일년치 중 사망 직전 석달 간의 진료비가 58%나 차지했다. 서울아산병원 고윤석 중환자실장은 ''부족한 중환자실 병상을 연명치료 환자들이 장기간 사용하다보니 정작 필요한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 문제점.대책=기도가 막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달 29일 타계한 김춘수 시인의 큰딸 영희(59)씨는 ''집으로 모셔 임종하려 했지만 산소호흡기를 떼면 의사가 처벌받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대법원이 올해 6월 치료 중단 의사에게 책임(살인방조죄)을 물은 '보라매병원 사건 판결' 이후 의사들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2001, 2002년 두 차례 소생 불가능한 환자의 진료 중단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진료 중단의 요건이나 과정을 정교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바람에 '소극적 안락사'로 몰려 유야무야됐다. 보건복지부는 현행 법령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치료 중단은 살인죄에 해당해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연명치료 중단의 취지를 사회가 똑바로 알고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과장은 ''연명치료 중단은 진료를 완전히 중단하는 게 아니라 통증 완화 위주로 바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고 죽음을 맞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권오정 교수는 ''의사나 보호자가 환자에게 질병 상태를 정확히 알려주고 연명치료 여부를 환자가 미리 정하게 하는 '사전고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대만에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프랑스 '품위있게 죽음맞을 권리' 보장]

프랑스 하원은 지난달 30일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규정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을 통과시켰다. 12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법안의 제5조에 따르면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요청할 경우 의사는 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모르핀을 주사하고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에 변함이 없는지를 재차 확인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을 반드시 기록해둬야 한다. 보건가족부 베랑제르 아르놀드 정책보좌관은 ''현행법상 의사가 환자의 편안한 죽음을 돕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떼도 처벌받는데 대해 비판 여론이 높아 이같은 법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치료 중단이 아닌, 독극물 주사 등 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安樂死)'는 여전히 불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프랑스는 앞으로 3년간 6500만유로(약 923억원)를 들여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 교육을 의사들에게 실시할 계획이다. 홍콩 역시 '품위있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홍콩 법률개혁위원회는 불치병과 말기 환자의 치료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법조.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관련 방안을 마련했다.

이 법의 초안에 따르면 말기 환자는 의사에게 미리 의견을 밝히면 자신이 혼수.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 심폐 소생술과 같은 생명 연장 진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 의사.변호사.가족이 함께 이를 결정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공공 의료기관은 말기 환자를 소극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 예컨대 죽음이 임박한 암 환자에게는 항암제 투여나 방사선 치료를 포기하고 링게르.진통제만 준다. 환자 가족은 하루 100홍콩달러(약 1만5000원.4인 기준)의 병실료만 내면 된다

[폐암 부인 떠나보낸 임현식씨]

''마지막 열흘, 아니 닷새만이라도 집 온돌방에서 지내다가 눈을 감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나마 중환자실에서 이것저것 꽂고 외롭게 떠나지 않게 해준 게 다행입니다.''

지난달 4일 경기도 일산시 SBS스튜디오. 드라마 '작은 아씨들' 마지막회 촬영 현장에서 만난 탤런트 임현식(59)씨는 부인 서동자(53)씨를 잃은 슬픔으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서씨는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9월 29일 숨졌다. 서씨가 암 선고를 받은 것은 올해 1월 초. 허리 통증이 계속돼 병원에 갔다가 간.늑골까지 종양이 퍼진 폐암 4기임을 알게 됐다. 처음 4~5개월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서씨는 본인보다 출가 전인 세 딸 걱정을 더 많이 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언제 예식장에 가야할지 모르는데 머리가 빠지면 어쩌느냐''고 했다. 8월 중순, 뇌압이 올라가며 서씨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암 세포가 뇌로 퍼졌기 때문이다.

뇌 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은 아내의 모습은 임씨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수술도 소용없었다. ''담당의사한테서 '가망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병원에서 나올 수 없더라고요.'' 처가 식구들과 의논해 아내를 중환자실에 보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서씨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임씨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 임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암 환자나 그 가족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이 너무 부족한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암 환자나 가족들에겐 무엇보다 하소연을 들어주며 차분히 상담해줄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해요. 오죽하면 제가 병실 청소하는 분을 붙잡고 아내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곤 했겠어요. 암환자를 다루는 의사나 간호사한테는 어떤 지침 같은 게 있어야 합니다.'' 임씨는 또 ''환자가 '가망없다'고 판단될 때 의사는 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인생을 정리하고 어떻게 임종할지 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8월 국립암센터에 1억원을 기부한 임씨는 ''다른 암 환자들은 우리 같은 고통과 후회가 없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2004-12-09 11: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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